
마태복음
“더욱이 그대의 형제가 그대에게 죄를 지으면, 그대는 가서,
그대와 그 사람만이 있는 자리에서 그의 잘못을 깨닫게 하십시오.
그가 그대의 말을 들으면, 그대는 그대의 형제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십시오.
그가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게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십시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땅에서 묶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늘에서 이미 묶인 것이며,
여러분이 땅에서 푸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늘에서 이미 풀린 것입니다.
다시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두 사람이 땅에서 무엇을 구하든지 마음을 같이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다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문제를 보기로 하자.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은 이 구절의 엄중함을 본적이 있는가?
이 구절은 우리에게 교회가 필요하며, 교회 안에 있는 것이 필요함을 말한다.
우리가 교회의 말을 듣기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이방인이 된다.
우리는 자신을 매우 영적이며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의 말을 듣기를 거절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다만 이방인일 뿐이다.
이것은 아주 엄중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의 상황을 보라.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이 여기저기에 있지만 누가 참으로 교회 안에 있는가?
여러분은 지방 교회에 오기 전에도 그리스도인이었다.
한 면에서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했고 심지어 주님을 추구했지만,
그때에 여러분은 교회 안에 있지 않았다.
여러분은 교회를 놓쳤다. 어느 정도는 교회의 말을 듣기를 거절했고,
더 심각하게는 지방 교회를 비판하고 비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전히 자신을 영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교회의 말을 듣기를 거절한다면,
주님 보시기에 이방인과 같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이방인은 누구인가?
이방인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며,
이 땅에서 교회 안으로 건축되지 않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있도록 우리를 그분의 백성으로 택하셨다.
하나님은 수많은 개인들을 택하실 의도가 없으시다.
그분의 의도는 한 백성, 집합적인 한 백성, 단체적인 한 백성을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로서 택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 안으로 건축되지 않는다면
본성에서는 교회의 한 부분일지 몰라도 위치적으로는 여전히 이방인이다.
우리는 거듭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과 신성하고
하늘에 속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본성에서는 교회의 한 부분이지만, 위치적으로는 교회 밖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늘에 속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에 상관없이,
우리는 위치적으로 여전히 이방인과 똑같다.
이것은 매우 엄중한 문제이다.
교회 안에 있지 않는 것은 엄중한 것이며, 교회를 놓치는 것 역시 엄중한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말을 듣기를 거절하는 것은 훨씬 더 엄중한 문제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모여야 하는가?
먼저, 우리가 합당하게 모이려면
우리의 집회는 반드시 교회와 연관되어야 하고,
교회에 속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집회는 반드시 교회와 함께 서 있어야 하고,
교회의 한 부분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집회의 목적은 교회의 결정을 집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오늘날의 기독교의 상황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
모든 자유 단체들이 마태복음 18장 20절을
그들의 집회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교회에 대하여 질문한다면,
그들은 교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은 다만 마태복음 18장 20절을 성경적인 근거로 하여
함께 모인다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서방 세계에서뿐 아니라
극동 지역에서도 동일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이지만,
그들은 함께 모일 때 교회의 위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믿는 이들의 모임,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반드시 교회의 한 부분이어야 하고,
교회의 위치에 있어야 하며, 교회의 결정을 집행하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없는 그리스도인의 집회가 수없이 많다.
그런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관해서 전혀 의식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집회는 교회와 연관되지 않거나, 교회를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집회에서 교회를 의식해야 한다.
엄격히 말해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안다면,
교회가 없는 방식으로 모이는 것은 사실상 죄임을 깨달을 것이다.
왜 그런가?
만일 우리가 교회를 합당하게 주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분열적인 방식으로 모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분열은 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도는 한 교회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분의 아들을 위하여 한 몸을 건축하는 것이다.
우리가 분열적인 방식으로 모이고 교회의 하나를 지키지 않은 채 모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집회로 그리스도의 몸을 손상시키는 것이며,
교회의 건축을 좌절시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인 줄 모르고 죄를 범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고 손상시키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잘못인 줄 알면서도 이렇게 한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출처 : 어떻게 모여야 하는가? / 위트니스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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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몸 한 교회를 얻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우리가 알고 있음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교회의 하나를 지키고
하나의 교회를 건축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