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회복은 유일합니다. 우리는 기독교의 일부가 아님니다. 이 개요를 준비하는 중에 이 형제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 여기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 속에 주님의 목양이 필요합니다. 어떤 것에서든지 우리의 마음에 걸림이 있다면   우리 속에 계신 주님께 돌이키고, 주님과 교통하십시오. 주님께 말씀드리고, 주님께 열어 놓으십시오”.

 왜냐 하면 이 말씀은 다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에서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영께서 최대한으로 흐르시고, 그 영으로부터 온 개요를 따라서 순서대로 교통하겠습니다.  

 


Ⅰ. 회복이란 하락되고, 손상되고, 상실한 후에 정상적인 상태로 복원되거나 돌아가는  것이다.

단 1:1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

스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4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니라 하였더라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6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황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즐거이 드렸더라7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전 기명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당에 두었던 것이라8 바사 왕 고레스가 고지기 미드르닷을 명하여 그 그릇을 꺼내어 계수하여 유다 목백 세스바살에게 붙이니9 그 수효는 금반이 삼십이요 은반이 일천이요 칼이 이십구요10 금대접이 삼십이요 그보다 차한 은대접이 사백열이요 기타 기명이 일천이니11 금, 은 기명의 도합이 오천사백이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 때에 세스바살이 그 기명들을 다 가지고 왔더라

 


 주의 회복 안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은 정상적인 상태입니다. 

니 형제님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정상적인 교회 생활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정상적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특별한, 특출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상태가 되기 위해서 여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정의한 정상적인 상태입니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역사적인 전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따라 정상적인 상태가 되기를 원합니다. 역사적으로 볼때 정상적인 상태가 하락되고, 손상되고, 회복의 진리가 상실되었습니다.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누림이 상실되었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없고,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이해가 없고, 교회에 대한 지방 입장이 상실되었고,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 실제를 상실했고, 그 몸에 대한 그 영이 상실되고, 몸의 유기적인 기능발휘가 상실되고, 참된 복음의 이해가 상실되고,  하나님의 경륜의 최종적인 새 예루살렘이 상실되었습니다. 그런 상실이 하락과 손상과, 합쳐졌기 때문에 회복이 필요합니다.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회복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강조하고싶은 것은 내가 주님의 회복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1997년에 그것은 다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주의 회복 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치나, 형제나, 동역자나, 사역자나, 이 시대의 소유가 아님니다. 이것은 주의 회복입니다. 개인의 소유가 아님니다. 이것은 주님의 회복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다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주의 회복은 유일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일하다는 것은 그 말 자체가 가장 유일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회복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Ⅱ. 우리는 주의 회복 안에 있으며 그분의 회복은 유일하다. 그리스도의 또 다른 몸이  없고 또 다른 신약이 없듯이 또 다른 회복은 없다.

주의 회복이 유일함으로 주의 회복이 유일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원수는 이 유일함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주의 회복의 사역 안에 서서 마귀의 얼굴을 밝혀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타협하지 않고, 우리는 유명해지기를 원치 않고, 그들의 한 종류가 되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어떠함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회복이므로 주의 회복이어야 합니다. 나는(란 형제님) 루터 교회의 한 교파에서 태어났습니다. 또한 장로교회의 영향을 받고, 장로교회의 신학을 알았습니다. 1966년 그 교회를 떠났고, 기독교의 모든 형식을 떠났습니다. 진영을 떠나서 영문 밖으로 나와서 장막 안에 들어 온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은 유일합니다. 정통적인 유대교를 떠나 거룩한 옷, 거룩한 음식, 그들의 자녀를 엄격하게 훈련시키는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의 어떤 것이든 담당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의 회복에는 그 표시를, 능욕을 지고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Ⅲ. 우리는 주의 회복과 기독교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기독교는 종교적인 체계로서 전통과 조직을 말합니다. 우리는 기독교라고 말할 때 신앙의 신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영을 말하는 것입니다.

 


A. 오늘날의 기독교의 가르침은 야고보의 가르침과 같다. 그것은 어느 정도는 옳지만      하나님의 계시의 최고봉이 빠져 있다―엡 1:17-23.

   어느 정도 옳지만 하나님의 계시의 최고봉은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야고보서 결정 연구에서 밝혀졌습니다. 야고보는 경건한 사람이고, 성경적인 사람이었고, 거룩하고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이었고, 영적인 사람이었고, 신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혼합된 사람이었고, 그는 어떤 진리를 붙잡았지만 그의 서신은 혼잡의 체현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혼합으로 가득했습니다.  주님은 그 이유 중 하나로 타이터스를 보내어 AD 7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하였습니다. 그것은 유대교 때문에 예루살렘교회가 혼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의 교리, 신학은 어느 정도 옳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최고봉의 진리가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에 동의 할수 없다면 VTR. 테이프, 잡지나 그 어떤 것이나 니 형제님과 이 형제님의 말씀 외에 고봉의 진리가 있다면 제시해 주시기를 바람니다. 나는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에 평강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와 주의 회복과 진리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의 회복은 비교적 다른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B. 주의 회복은 기독교와 절대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주의 회복이 기독교에 빠져 있는  신성한 계시의 표준에 이른 것이기 때문이다.

  형제들이여! 진리의 표준을 낮추려고 하는 경항이 우리의 교회 생활에 조금이라도 있다면, 무의식 적으로든, 잠재의식 적으로든,  조금이라도 있다면, 기독교와 조화하려는 것입니다. 주의 회복은 신성한 계시의 표준에 이르러야 합니다.

 


C. 주의 회복의 세 방면은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사람 생활, 교회의 실행이다

   - 고후 13:13, 빌 1:19-21, 계 1:11.

  우리는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완결된 영, 영원한 생명, 그리스도의 몸, 교회, 새 예루살렘의 완결의 계시가 있습니다. 이것이 주의 회복계시의 회복만이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사람의 생활의 계시의 회복입니다. 우리의 천연적인 인간생명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의 인격으로 살아서 신성을 인성으로 표현하는 생활입니다. 우리는 계시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니다. 우리는 계시를 가지고 인간적이고, 종교적인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님니다. 주님은 하나님 사람의 생활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교회 안에서 진정하고, 순수한, 합당한 지방교회의 생활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지방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의 인식을 가지고, 몸의 의식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주의 회복입니다.

 


Ⅳ. 주의 회복은 세속적이거나 일반적인 기독교의 일이 아니다. 주의 회복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회복하려는 주님의 남은 자들의 모임이다―마 16:18-19, 롬   14:17, 계 1:4-6.

왜 우리는 복음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과 협력할 수 없는가? 왜 우리가 종교 그룹들과 동역할수 없는가? 그 이유는 우리의 목표가 다르게 때문입니다. 우리의 복음전파 목적은 사람들을 얻어서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몸을 건축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속적이고, 일반적인 일이 아님니다. 나는 형제 빌리그래함을 존경합니다. 내가 신학 대학 시절 때 그분과 상당한 시간을 드려서 교통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의 복음전파를 존중함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성경을 주고, 그들의 취향에 따라서 교회 생활을 하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 도시에 있는 교회에 더해졌습니다. 우리가 지방교회와 기독교 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이 있다면 그 다리를 불태우고, 격차를 이을 수 없게 해야합니다.

주의 회복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회복하려는 주님의 남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A. 주의 회복은 어떤 일이나 교훈이나 신학이나 운동이 아니다. 회복은 우리 속으로 뿌려진 생명의 씨이신 그리스도 자신이다―마 13:3, 37, 막 4:3, 14, 26-29.

   회복이 어떤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당신이 어떤 일에 중독되는 것이 아님니다. 회복이 일에 중독되어 주님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아님니다. 주의 회복은 어떤 교훈도, 신학도 아님니다. 확증과 비평을 내가 쓰고 있지만 그러나 주의 회복은 신학이나 운동이 아님니다. 우리 가운데 유능한 형제가 운동을 일으켜서 하락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태워 졌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떤 운동이 아니라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움직임을 원하지만 운동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운동과 주님의 움직임을 분별해야합니다. 회복은 우리 안에 뿌려진 생명의 씨가 회복이요. 그 씨의 발전된 그리스도가 회복입니다.

 


B. 대적은 주의 회복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며, 회복이 자신을 이기고 천국을 세우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계 11:15.

   우리는 이것을 믿으십니까? 나는 마음을 다 하여 이것을 믿습니다. 주의 회복은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의 하나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우리는 왕국이 스스로 나뉘면, 이길 수 없지만 나뉘지 않고, 천국을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에 나이가 많은 안나와 시몬을 볼수 있습니다. 그들이 성전에서 기도하여 주님이 첫 번째로 오셨습니다. 또한 회복을 통하여 두 번째로 오실 것입니다. 대적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주의 회복은 종교와는 다름니다.

 


Ⅴ. 주의 회복은 오늘날의 종교와는 다르다. 회복과 기독교가 화목하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마 13:31-33, 44-46, 계 18:4, 19:1-3, 7-9.

   최근에 어떤 형제님들이 기독교에 있는 사람들과 교통했습니다. 그 교통은 아주 뛰어난 교통이었습니다. 형제들의 사랑은 진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우리가 전 세계의 하나님의 교회와 같은 노선을 걸을 수 없겠는가?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의 인도자가 죽었을 때, 그 가르침을 거부하고 그가 말했던 모든 것들을 수정하여 기독교의 어떠함을 받아드릴 수 있게 고쳤다는 것입니다.  이 형제님이 주님께 가셨으므로 이제 몇 가지를 떨쳐 버리고, 재 정의하여 사람들이 기독교에서 잘 받아 드릴수 있도록 할수 없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때 우리의 형제들이 신실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어떤 것도 떨쳐 버릴 수 없고, 어떤 것도 바꿀수도, 그 어떤 것도 버릴수도 없다는 것을 간증했습니다. 바울은 나 없을 때 더욱 그리하라“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교통했던 바와 같이 우리는 항상 믿는이들을 받아 드림니다.

우리에 대한 거짓말을 받아 드리지 않고, 우리를 존중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귀히 여기지만 많은 근본주의 적인 복음주의가 받아 드리도록 수정할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회복과 기독교가 화목하게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A. 회복은 신성한 계시에 따른 교회 생활의 순수한 실행을 위해 성직자-평신도라는 비성경적 체계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어 시초로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 계 2:6, 15,  마 16:18, 엡 2:20-22.

   어떤 목사나 어떤 신부나 어떠한 성직자- 평신도 제도를 받아 드릴수 없습니다. 그가 주의 회복을 접촉하고 회복역을 읽고 빛 비춤을 받아서 우리는 아주 실제적이라는 것을 그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직자- 평신도 제도가 없고, 설교자나 전통적인 신부나 목사가 없고, 우리가 다 형제로서 여기는 것입니다. 여기는 다만 형제로서 받아드릴 뿐입니다. 다만 한 형제가 되어 올수 있겠습니까? 특별한 형제가 아니라 다만 한 형제로서 만족하고 지체가 될 수 있겠습니까? 비 성경적인 체계를 우리가 완전히 무너뜨리고, 결코 과거의 체계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B. 주님의 산 간증과 전통적인 교회 사이에 화목은 있을 수 없다.

   - 딤전 3:15-16, 딤후       2:19-22.

   우리는 타협하는 대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차이점은 우리와 화목 될 수 없습니다.

형제들이여! 불가능한 것을 하려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십시오. 기독교와 화목하려고 에너지를 사용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화목을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해도, 댓가는 기독교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기독교가 침범된 교회로서 지방교회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주의 회복에 있는 지방 교회의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끔찍한 상황입니다. 그들이 격는 손상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주의 회복의 유일함을 위해서 우리는 그 기준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신을 위하여, 성도들의 혼을 위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그런 길을 가야 합니다.

 


Ⅵ. 주의 회복의 배경은 혼돈과 분열이 특징인 기독교이다―창 11:1-9, 고전 1:10-13.

    네 중점 앞에 있는 중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 숫자 Ⅵ는 중심 부담이요, 심장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A. 고린도전서 12장 12절은 주님께서 분열과 혼돈 대신 무엇을 원하시는지 우리에게  말해 준다. 그것은 분열과 대립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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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하십시오. 딤후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