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제가 워치만 니 형제님의 책을 여러권 읽고, 서점에서

회복안에 형제들을 만나 그들이 워치만 니의 여러 책들을 빌려주실때 저는 뛸듯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회복안에 지체들은 그들생활이 전체가 교회생활임을 보고 참많이 도전이 되었습니다.

이들과 연결되어 1-2년사이 저는 많은 각도시에 교회들을 방문하고, 대만을 가고,

후에는 미국을 가게 되었는데, 얼마나 사랑이 충만하고(사실 친척도 그렇게 못할텐데,

황후가 된 느낌이었음) 그 풍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한 영과 한몸과 한 흐름을 보게하셨고, 놀라운 우주적인 몸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당시 저는 깊이 고민한 시간들이 있었는데,

한도시에 한교회의 지방적 관점이 저를 많이 괴롭혔습니다(행8:1, 딛1:5, 계1:11)

성경적임으로 받지 않을 수가 없었지만, 그러면 내가 전에 있던 곳에 주님을 사랑하는 집사님들,

나와함께 새벽제단을 쌓던 그 신실한 집사님들, 그 귀한 말씀을 전해준 목회자들은

구원을 받지 않은 것이란 말인가? 말도 안된다....

이러한 의구심들로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습니다.

생명을 누리는 것은 좋은데, 교회의방면은 아무래도 받기가 어려웠지요.

 

주님께 감사합니다. 이런 저에게 어느날 주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제 마음의 의구심을 말끔히 씻도록 스가랴서의 말씀을 열어주셨습니다.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슥1:8)

 

여기서의 사람은 인성안에 계신 그리스도로서 여호와의 사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여호와의 사자 예수 그리스도가 홍마를 타고 계심은, 피흘림을 통한

구속안에 계심을 말하고, 말을 타고 계심은 안주함이 아닌 신속한 움직임을 의미합니다.

화석류나무들은 바벨론의 포로됨 가운데서 굴욕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고,

그분은 홍마를 타고 골짜기 바닥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계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바벨론(분열된 기독교) 안에도 계심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저도 그곳에서 구원을 체험했는데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안에 구원이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거기서 안주하는 것이 아닌, 바벨론의 70년의 포로됨에서 나와

예루살렘의 영광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도록 그분은 서계셨습니다.

그것은 홍마를 타고 앉아서 안식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standby 상태임을 알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스룹바벨을 사용하시고, 에스라, 느헤미아를 사용하사 바벨의 포로에서 구출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 일하시는 여호와의 사자임을

본 것이지요(스1-2장)

 

그래서 저는 가끔 많은 종파와 교파와 더 심각하게 말하면 서로 다투는 분열가운데 있는

기독교안에 형제들을 보면, 그분들과 하나님의 갈망을 이루는 주의회복과의 차이는 바로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몸을 건축하는 [진도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기독교가 틀린것이 아니라, 구원이 없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우주적인 한몸]으로

건축됨이 없습니다.

주님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믿음으로 의롭게됨 이후, 많은 것을 회복하셨습니다.

구약의 예표와 예언, 진리와 생명을 회복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은 에베소서 전체의 주제, 고린도 전서, 로마서의 결론인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

 더 자세히는 4장12,13,16절을 회복하고 계십니다.

 

장래에 우주적인 건축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여~

십자가의 역사와 그 효능이 없이는, 자신이 부서지고, 갈려지고, 열려있고, 변화됨이 없이는,

그날에 몸이 건축될 것이라고 속지 마십시요.

생명이 성장한 만큼 몸을 보게 되며, 재가 되어 몸을 건축하는 자가 되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상태가 우주적인 몸의 하나의 건축의 터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주적인 몸의 하나의 건축의 실재가 있는지 살펴보아야합니다. 그 가능의 싹이 보이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신후 2천년 교회역사는 오직 이 목적을 위하여 사탄과의 맹렬한 전쟁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마음이 맞지 않는 형제들이 아니라

형제를 나누는 온갖 술책을 가진 사탄입니다.

사실 가장 큰 대적은 바로 우리속의 자아와 , 머리되려는 야심입니다.

주님, 우리 모두를 긍휼히 여겨주사, 생명의 풍성한 꼴을 누리게 하심으로

십자가의 역사 아래서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몸을 건축케하옵소서.

이것이 우주안에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뜻임을 인하여 주께 찬미를 드립니다.

 

 http://blog.chch.kr/Hannah/15335  한나 자매님의 글